“넌 한국사람이니 한국말 잘해라 그랬는데 … 엄마는 거짓말쟁이”
글쓴이: 관리자  작성일: 2010-05-03
조회: 3,487
대한민국 ‘마이너리티 2세’ 그들의 외침…불법체류 방글라데시인 초등생 민수 [조인스]
[2009년을 보내며] “넌 한국사람이니 한국말 잘해라 그랬는데 … 엄마는 거짓말쟁이”
 
 기사입력: 12.20.09 13:46
 
 
 

 
검은 피부의 방글라데시인 불법 체류자. 주민등록번호도 없지만, 민수(7·가명)의 태권도복 가슴엔 태극기와 ‘코리아’가 새겨 져 있다. 1년 전부터 태권도를 배워 온 민수는 최근 1품 심사를 통과했다.[최승식 기자]
초등학교 1학년 민수(7·가명)의 부모는 불법체류자다. 1997년 방글라데시인 아빠(41)·엄마(37)는 3개월짜리 비자 를 받고 한국에 왔다. 일자리를 얻은 부모는 불법체류자로 한국에 남았다. 그러다 2002년 민수를 낳았다.

긴 속눈썹에 짙은 쌍꺼풀, 초콜릿색 피부. 민수는 ‘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방글라데시인의 외모’를 가지고 있다. 하지만 국내 에서 태어난 민수의 정체성은 ‘100% 한국인’이다. 1학년 민수는 국어 90점을 받아 반에서 2등을 했다.

민수는 자신이 한국 아이들과 다르다는 걸 이제 막 알게 됐다. 그리고 자신의 신분 역시 부모와 같은 ‘불법체류자’라는 사실 도. 생후 13개월이 된 민수의 동생도 마찬가지라는 것도. 그 모든 것이 자신이 선택한 게 아니었다. 민수는 정체성 혼란을 겪 고 있다. 경기도에 있는 49㎡(15평) 반지하집에서 민수를 만났다. 보금증 300만원에, 월세 20만원짜리 집이다. 햇빛이 들어 오지 않아 낮에도 형광등을 켜놔야 했다. 아이는 기자와 조금 친해지자 ‘기자 누나’라고 불렀다(기자는 25세 여성이다). 아이 의 말을 지면에 옮겨 불법체류자 2세의 삶을 들여다봤다.

누나는 주민등록번호 있어요? 와! 그럼 아이디(ID)도 있겠네. 카트라이더(인기 인터넷 게임)도 할 수 있겠네. 누나 주민 번호 잠깐 빌려서, 누나 컴퓨터로 한번 들어가 봐도 돼요?

난 주민번호가 없거든요. 그래서 회원 가입을 못 해요. 학교 홈페이지에도 들어갈 수 없어서 공지사항을 확인할 수 없어 요. 친구들한테 다 물어봐야 해요. e-메일도 못 보내요. 엄마한테 물어봤더니, 내가 방글라데시 사람이라 그렇대요. 엄마는 거짓말 쟁이야. 예전에는 내가 한국 사람이니까 한국말을 잘해야 한다고 그랬거든요.(불법체류자인 민수 부모는 주민번호가 없다. 단속 대상이 라 언제 추방당할지 모른다. 통장도 만들 수 없고 보험도 들 수 없다. 아빠는 공장에서 일하고 엄마는 작은 보습학원에서 영어를 가 르친다. 월 수입은 둘이 합해 180만원이다. 그중 30만원은 고국에 있는 각자 부모에게 보낸다.)

난 몸이 좀 약한 편이에요. 지난해에는 편도선 수술도 했어요. 그때 엄마가 정말 많이 한숨을 쉬었어요. 아빠는 친구한테 돈 도 빌렸대요. 엄마는 반지하방에 오래 살아서 내 기관지가 약해진 거래요.(보험이 안 돼 수술비만 350만원이 나왔다. 빚 때문 에 방글라데시로 돌아가기 힘든 상황이다.)

 
집에서 병원 놀이를 하는 민수와 돌이 갓 지난 여동생. 
누나, 그거 알죠? 우리 엄마·아빠 불법인 거. 아는 형이 있는데, 그 형 아빠도 올봄에 쫓겨났어요. 난 정말 방글라데 시 가기 싫어. 난 한국말밖에 못해. 거긴 친구도 없어. 나 정말 공부 열심히 해요. 국어·수학 전부 90점 넘어요. 가끔 경 찰 아저씨를 만나면 인사도 열심히 해요. (두 손을 배꼽에 모으고 허리를 깊게 숙이며)엄마가 가르쳐준 ‘배꼽인사’요. 그럼 잡아가 지 않을 거 같아서요. 학교에서 소원을 적어내라고 한 적이 있어요. ‘합법 되는 것’이라고 써냈어요.(민수는 기자에게 말을 하 다 엄마를 돌아보더니 “엄마도 경찰한테 잡혀가지 않도록 조심해. 아빠한테도 전해줘”라고 말했다. 민수의 꿈은 도둑 잡는 경찰이 다.)

누나, 난 우리 반 형식(가명)이가 제일 싫어! 맨날 외계인이라고 놀려. 싸운 적도 있어요. 애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서 내 눈을 때린 적도 있어요. 한참이나 눈앞이 안 보일 정도로 아팠어요. 엄마는 “그 애 엄마, 어쩜 미안하단 소리 한번 안 하 느냐”며 울었어요. 엄마는 나보다 한국말을 더 못하는데. 친구들이랑 싸우고 나서 담임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“민수는 오바마 대통령처 럼 대통령이 될 수도 있는 아이”라고 했어요.(담임 교사가 다문화 교육을 한 것이다. 2008년부터 불법체류자의 자녀라도 거주 가 확인되면 초등학교 전입이 가능하도록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개정됐다.)

누나, 난 ‘마법의 성’(더 클래식의 노래) 노래 제일 좋아해요. 누나는요? 수업시간에 배웠는데 가사가 감동적이잖아요. 같 이 불러볼래요?(아이는 거침이 없었고, 성격이 밝았다.)

“자유롭게 저 하늘을 날아가도 놀라지 말아요. 우리 앞에 펼쳐진 세상이~ 너무나 소중해. 함께라면.”

누나 내일도 와요. 누나한테 해줄 얘기가 아직 많아요. 또 올 거죠?

김효은 기자, 사진=최승식 기자